BLOG ARTICLE 백탑파 | 2 ARTICLE FOUND

  1. 2008.08.21 아름다운 사람들 - 열녀문의 비밀
  2. 2008.08.21 '역사 추리' 라는 장르

열녀문의 비밀 -상열녀문의 비밀 -상 - 10점
김탁환 지음/민음사
 
  방각본 살인사건에서 5년이 지난 후의 그들을, 긴 기다림 끝에 만날 수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하루만에 상.하 권을 다 읽고, 머리속에 자주빛 안개가 낀 기분으로 지금 자판을 두드린다.
 
  백탑파 시리즈의 두번째인 이번 소설에서는 전작보다 한층 더 깊어진 그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었다. 전작이 약간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좀더 편안하게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듯한 느낌이다. '열녀문의 비밀' 에서, 작가는 '열녀'를 다시 정의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공맹의 도를 따른 열녀가 아닌, 열녀를 넘어서는 삶에 대해 말한다. 시문에 능하고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농사를 짓고 장사를 하며 자신이 배운것을 삶에 적용시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여인. 그러나 그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행복까지도 찾아서 살아 가는 긍정적인 여성상에 대해 작가는 화광의 입을 통해 재 평가 내리고 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열녀이자 훌륭한 여성상으로 평가하는 사임당이나 난설헌에 비해 조악하다고 할 수 있는 삶이지만, 훨씬 행복한 삶이 아닐까.  책속의 '아영'은 현대를 살아가는 그 어느 여성 못지 않은 앞선 시각으로 시대를 살아간다.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았던 여성이 있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읽는 내내 마음속 한 구석이 시원했던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번권에는 전권에 비해 '야소교도'라 불리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삶이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아직은 그 불꽃이 작고 점차 불꽃을 키워나가는 단계이지만, 아마 후작중 한권은 좀더 본격적인 박해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이정도로 복선을 깔아두었는데 그냥 지나칠 작가는 아닌것 같고..

  주인공인 청전의 회상조도 왠지 가슴에 오래 남는다. 중간 중간 회상조로 기술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특히 본문에 서술하고 있는 지인들이 죽고 백탑파의 꿈이 흩어진 '지금'의 목소리로 말하는 부분이 너무 쓸쓸하게 느껴져서 가슴이 아팠다.

  그렇지만 역시 읽으면서 즐거운 부분이 더 많았다. 우선 생소하고도 좋은 어감의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여 옛 대화의 느낌을 잘 살렸다는것. 일일히 괄호를 달아 뜻을 해석해 놓아서 이해하는데는 전혀 문제는 없었다. 그 중 몇개는 적어놓고 나중에 써먹고 싶을 정도로... 또 확실히 작가가 영상물을 염두에두고 글을 쓰고 있다고 한 만큼, 배경이나 상황묘사가 너무나 아름답게 나온다.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18세기 조선에서 살고있는것만 같다. 아니, 실제로 너무 살아보고싶다.
 
  게다가 화광과 청전의 사귐이 더 깊어진 것이 무엇보다 가장 흐뭇하다. 시대를 떠나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가치중의 하나인 우정과 같은 요소는 소설의 즐거움을 두배로 늘려준다. 그리고 그밖에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 아직까지 언급되지 않는것으로 보아 화광은 결혼을 안한것이 아닐까? (실제로 화광은 자신의 아이가 자신과같은 서얼의 슬픔을 맛보게 하기 싫다고 말하고 있기도 하고 ) 청전은 확실히 전편에서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있다고 나오지만....  작가의 흐름에 독자는 쫓아가기 바빠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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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fact)과 허구(fiction)가 합쳐진 '팩션'이란 장르가 요즘 뜨고있다. 그냥 허구로만 이루어진 소설에 이런 저런 역사적인 사실들을 접목시켜 새로운 재미를 탄생 시킨것이다. 사실 이러한 팩션의 기법은 예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요즘 다시 뜨고있는것은 역시 댄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사실과 허구가 너무 절묘하게 결합이 되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구분하기 조차 어려운 '다빈치 코드'는 독자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 이후로도 '4의 규칙'같은 소설들이 나오면서 당분간 팩션의 붐은 계속될 듯하다.

  왜 이렇게 '팩션'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냐 하면, 바로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역사 추리 (historical mistery)'가 바로 그러한 팩션 기법을 주(主)로 쓰고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역사 추리'라는 장르는 외국에서는 많이 자리잡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는 많이 인식되지 않은 장르이다. 아직 정확하게 정의되지도 않았고, 요즘에는 여기 저기에도 걸핏하면 역사 추리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그러나 나는 정통적인 역사 추리소설은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배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추리소설' 이라고 생각한다. 즉, 위에도 언급했던 '다빈치 코드'나 '4의 규칙' 같은 소설은 아무리 과거 사실이 나와도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역사 추리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역사 추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1. 과거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2. 실존인물과 허구적인물이 동시에 등장하며 3. 각종 사건에 대한 추리 가 가능해야 한다고 본다.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앨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시리즈'와 같이 중세 수도원을 무대로한 추리소설, 고대 로마 제정시절을 바탕으로 한 유쾌한 탐정 '팔코 시리즈', 시오노 나나미의 16세기 로마의 세도시를 무대로한 '세 도시 이야기 시리즈' 또 17세기 영국을 무대로한 이안 피어스의 '핑거포스트,1663', 19세기 미국을 배경으로 한 매튜 펄의 '단테 클럽', 한국의 정조시대를 무대로한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 , 김탁환의 '백탑파 시리즈' 등은 모두 실제 있었던 역사 사실속에서 허구적 인물과 실존적 인물이 뒤섞여 등장하는 추리소설, 즉 역사 추리소설이다. 특별히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현대로 끌어내와 추리하지 않아도 이미 이 소설들은 배경에서부터 매력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소설속의 케릭터들이 하는 행동, 말, 사고방식등이 모두 그 시대를 은연중에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로서는 과거의 '선조님들'을 즐겁게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추리'라는 요소까지 섞이면 그 매력이 증가한다. 원래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오랫동안 넓게 사랑받고 있기도 하거니와, 현대의 과학적인 수사 방법과는 달리, 우리 역사 추리소설속의 주인공들은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추리를 하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무식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지금 사람들보다 더 현명하게 추리하고 더 나아가 삶에 대한 성찰까지 하는 그들을 바라보면 신선한 충격에 사로잡힌다.

  개인적으로 역사 추리소설의 역사와 추리의 비율은 대략 7:3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훌륭한 역사 추리소설은 추리적 요소도 훌륭하게 들어가 있지만, 내가 말하고 싶어하는것은 단순히 추리를 뛰어넘는 재미가 역사 추리소설에는 있다는 뜻이다. 정통 추리물보다 다소 추리적인 재미가 적더라도 전체적인 소설의 완성도가 떨어지는것은 아니며, 오히려 적당히 역사적 요소와 추리적 요소를 머리 아프지 않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소설과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매력적인 장르는 없다.

또다른 역사추리 소설의 매력중 하나는 바로 실존인물과 허구적인물의 혼재이다. 대체로 역사 추리소설의 주인공은 허구적인물, 또는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하지만 그리 유명하지 않아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일 경우가 많고 주인공의 주변인물로는 실존인물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작가는 주인공을 허구 인물로 내세움으로써 자신이 표현하고 싶었던 내용을 주인공을 통해 마음껏 표현할 수 있고 주변인물을 실존인물로 함으로써 훨씬 사실감을 줄 수 있다. 주인공이 완전한 실존인물일 경우에는 표현의 제약이 있고 더 나아가 '왜곡'했다는 평을 들을 수도 있기때문에 표현에 있어 조심스러워진다. 그러나 주변인물의 경우에는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실존 인물의 가치관의 틀 안에서 행동하는 것 만으로도 이야기의 흐름을 훨씬더 실감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작가는 가능하면 많은 실존 인물들을 소설에 등장시킴으로써 실감나는 효과를 극대화하려 한다. 그리고 독자는 허구적 인물과 실존 인물의 교류속에서 마치 자신이 실존인물을 만난 것인양 느끼게 되고 또 잘 모르는 인물인 경우에는 배경지식을 찾아보기도 하면서 소설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 지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글을 쓰는 나 자신도 많은 역사 추리소설을 접해본 것은 아니다. 역사 추리소설들을 많이 아는것도 아닐 뿐더러 우리나라에 번역되는 외국 소설이나 우리나라 소설 자체도 많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앨리스 피터스 추모소설인 '독살에의 초대'를 읽고나서 '외국에는 이렇게 많은 역사 추리소설 작가가 있구나' 라는 생각에 충격이 이루말할 수 없었다. 요즘들어 역사 추리소설의 가치가 급부상 되면서 뜨거운 관심이 모여지고 있는 듯하다. 솔직히 갑자기 끓고, 갑자기 식는 이러한 관심이 반가운 것만은 아니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에서도 역사 추리소설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함께 훌륭한 소설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외국의 역사 추리 소설들을 많이 번역해 주는것 역시 대 환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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