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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21 4개의 진실 - 핑거포스트,1663

핑거포스트, 1663 1핑거포스트, 1663 1 - 10점
이언 피어스 지음, 김석희 옮김/서해문집
  장미의 이름에 이은 수작! .... 이젠 너무 많다. 솔직히 내가 아는 왠만한 역사 추리소설은 다 한번씩 움베르트 에코를 거론하며 홍보하니 이젠 너무 식상하달까. 그렇지만, 이안 피어스의 핑거포스트 1663 (원제 : An Instance of the Fingerpost ) 또한 그러한 찬사를 받을만한 수작이다.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벌어진 한 살인사건에 대해 4명의 증인이 각자 다른 진술을 한다. 청교도 혁명을 일으킨 크롬웰이 죽고 찰스2세가 다시 왕정복고를 이루어낸 때, 국교도가 아닌 천주교인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지고 끊임없는 반란의 조짐이 각지에서 일어나던 혼란한 시대상황은 실로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서술자로 등장하는 '마르코 다 콜라'의 글을 읽으며 나는 솔직하면서도 담백한 그의 문체에 빠져들어갔고 그의 증언을 다 읽을 즈음에는 완전히 매력적인 인물로 콜라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솔직히 뒤에 나오는 잭의 증언, 그리고 특히나 더 월리스 박사의 증언을 읽을 때에는 커다란 충격에 사로잡혔다. 한점 의심할 점이 없을것 같은 명랑한 베네치아 신사 콜라가 그렇게 극악무도한 살인마로 비추어질 수 있다니. 솔직히 그로브 박사의 죽음에 대해 사라의 고백만듣고 '진짜 그녀가 범인이니까 자수했겠지'라고 믿는 콜라를 보면서 우스웠지만, 그렇게 믿는것처럼 진술한 콜라이기에 너무 순수해보여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 소설에서 살인사건은 커다란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네명의 증언에서 그로브 박사의 죽음은 단순히 어떤 큰 흐름속에 일어난 작은 일일 뿐이다. 각각의 증언이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고, 살인사건은 그들이 어떤 일을 하던 중에 어쩌다 일어난 배경처럼 서술되어 있다. 그렇기에 누가 그로브 박사를 살해했는가에 대해 아무도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고 그냥 한사람을 각자 범인으로 지목한 채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네명의 진술은 살인사건으로 얽혀있을 때 비로소 진가를 발휘한다.

  옥스퍼드의 사학자로 나오는 우드의 증언은 정말 결정적이다. 범인도 확실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네명의 이야기를 종합할만한 놀라운 사건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사람의 이야기에 살인사건말고 공통으로 등장하는 중요 인물 '사라 블런디'에 관한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네명의 진술 가운데서 가장 엇갈리는것도 바로 사라에 대한 인상이다. 누구에겐 요녀로, 버릇없는 하층민으로, 지적인 인물로, 심지어 여신으로까지 보이는 이 여인은 과연 진짜 어떤 인물이었을까. 모든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지만 증언하지 않는 사라블런디의 증언이 하나더 추가되어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핑거 포스트가 아닐까.

  사람들은 각자 보고싶은 대로 사건을 보고 납득한다. 다른 사람의 증언에서 어리숙한 바보로 나오는 앤소니 우드가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고 심지어 나름대로 추리까지 해 사건의 본질에 다가간 것을 보라! 그러나 1권 뒤에 있는 역자의 말에 보면, 우드의 증언이 핑거포스트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또다른 우상일지도 모른다고 넌지시 일러두고 있다. 과연, 그 는 많은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또한 '자신의 관점'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말이지! 한사람의 증언에서는 알 수 없는 여러 사실들을 조합해서 사건의 본질에 다가가는 형식이 참 참신한 소설이다. 김석희님의 번역도 아주 매끄러웠고 거의 모든 면에서 만족한 소설이다. 콜라의 영국에 대한 냉소나,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여러 학자들에 대한 언급, 또 의학,신학,정치,경제,사회등 다방면에 걸친 대화등이 시대배경을 아주 사실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특히 옥스퍼드 거리묘사는 실제로 옥스퍼드에 와있는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단 한가지 아쉬운점은, 이 책이 나오기전에 번역되었던 '옥스퍼드의 4증인'에서는 2권 뒤에 있던 역자의 말이 '핑거포스트, 1663'에서는 1권 뒤에 있다는것이다. 멋모르고 1권 뒤에 있는 역자의 말을 읽었다가는 스포일러를 당하기 십상!!! 실제로 나도 '아이쿠'했다. 출판사에선 미처 그것까지 고려를 못한 것일까. 책의 특성상 아주 많이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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