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2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23 - 10점
콘노 오유키 지음, 윤영의 옮김/서울문화사(만화)

  코발트 문고의 인기 시리즈 마리아님이 보고계셔. 발행 초-중반즈음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며 (물론 지금도 꾸준히 OVA나 시리즈가 제작되고 있다) 많은 인기를 끌었던 라이트노블이다.

  그리고 23권.. 이제 슬슬 늘어지기 시작하는 순간. 사실 개인적으로 챠오! 소렐라 까지가 스토리전개에 무리가 없었다고 본다. 그리고 유미가 드릴양을 여동생으로 맞는 이벤트를 위해 앞으로 근 7권정도를 끌게 되는데... 나는 스토리가 길게 이어지는것에는 불만이 없으나, 한권에 수록되는 내용의 양이 적어지고, 한권한권 생겨나는 에피소드가 전체적으로 토코에 묻히는 감이 있는것에는 불만이 있다. 그래 마치 이번권처럼.

  이번권은 유미가 작품내에서 두번째로 맞는 설을 그리고 있다. 역시 작년과 마찬가지로 사치코네 집에서 설날을 보내지만 구성원은 약간 다르다. 마치 장소만 바꾼듯, 다양한 장미들이 즐겁게 노는 광경이 상당히 즐겁게 그려지고 있어서 읽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정말 즐거운 순간에도 유미는 2% 부족함을 느끼는데....

  유미가 토코를 여동생으로 맞이하는 이번과정은 사실 저번 사치코와의 엇갈림만큼이나 유미에게는 커다란 사건이다. 한권한권 지날때마다 유미가 성장해가는게 뚜렷하게 느껴질만큼 작가는 이 이야기에 상당한 정성을 쏟고 있다. 다만, 그래도, 질만큼이나 좀더 양적으로 충실하게 될 순 없는걸까. 최근 몇권 계속 양이 너무 허전하다...  20권에서 30권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팬들도 확실히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하지만 역시, 이 시리즈는 꽤나 잘써진 라이트노블이라고 생각한다. 곧 완결이 되리라 생각되지만 (하지만 작가가 어디까지 그릴지는 모르겠다. 이상태로 보아 유미의 졸업까지 갈것같기도하고;) 그날까지 이 요조숙녀 아가씨들의 떠들썩한 나날을 함께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AND

나의 아름다운 정원나의 아름다운 정원 - 10점
심윤경 지음/한겨레출판
   누구에게나 유년시절은 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름답게 채색되기도 하고 얼룩지고 빛바랜 청사진이 되기도 한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이해하고 보호막을 깨면서 사람은, 유년을 탈피하여 어른이 되어간다. 어른이 된 후 회상하는 유년시절이 행복함으로 기억될지, 괴로움으로 기억될지는 사람마다 다르나 단한가지 누구나 갖는 감정이 있다. 그리움. 그것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린시절에 대한 추억이다.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정원'은 그러한 그리움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시대가 다르고 성별이 다르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주인공 한동구에게 동화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동구를 통해 어릴 적의 자신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구는 아주 평범한 아이이다. 부모님이 안 계신 것도 사회의 냉혹함을 일찍부터 깨달은 아이도 아니다. 이렇게 평범한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동구와 함께 호흡하며 독자는 어른으로 성장하기 이전의 유년시절을 아련히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동구의 동생, 영주가 태어난 1977년부터 영주가 죽은 후인 1981년까지의 5년을 중심으로 동구의 내면적 성장에 주목한 성장소설이다. 언제나 며느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고집 센 할머니와 겉으로는 참지만 속에서는 맞대응 하는 어머니,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가장의 권위를 앞세운 폭력으로 가정을 애써 안정시키려는 아버지. 이런 고부갈등, 권위주의에 억눌리며 동구는 자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구에게 삶의 희망이 되는 두 사람이 있으니 바로 동생 영주와 박영은 선생님이다. 영주는 어린아이답지 않은 애정표현과 사랑스러움으로 폭발할 것 같은 가정 내에서 일렁이는 봄바람 같은 존재가 되었고, 박영은 선생님은 난독증을 앓던 동구에게 글자를 가르쳐주고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야를 가르쳐준 인생의 스승이다. 후에 동구도 회고하듯 영주와 박영은 선생님과 같이 지내던 이 5년간은 동구의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했던 시기- 유년기에 대한 그리움으로 남게 된다.

  또한 동구의 유년기는 정치적으로도 아주 민감한 시기이기도 하다. 10.26사태, 12.12,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건들을 어린 동구는 경험한다. 그러나 인왕산 자락의 동구에게는 ‘대통령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탱크가 있고’, ‘박영은 선생님이 데모하는’ 정도의 일이다. 작가는 이태혁과 주리삼촌이라는 등장인물을 통해 잠시 시대를 논하지만, 동구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다. 시대가, 동경하는 박영은 선생님을 앗아갈 때야말로 동구는 데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사회의 눈’을 갖게 된다.

  동구는 자신의 의견을 겉으로 잘 표현할 수 없는 만큼 내면의 자아가 성숙해 있다. 각각의 상황과 주변 인물들에 대해 단순히 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의젓한 태도를 보이며 그 누구보다도 세심하게 나름대로의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아이일 뿐이다. 그러한 동구에게 영주의 죽음과 박영은 선생님의 실종은 순수했던 유년기를 탈피해 성장해야만 하는 선택을 강요한다. 주변의 어른을 아무도 의지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동구는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을 깨닫는다. 소설에서 동구가 좋아하는 삼층집의 정원은 아름다운 유년기를 상징한다. 그곳에는 모든 것이 있다. 작고 하찮은 것 에서부터 크고 아름다운 것까지, 그 모든 것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그러나 그 곳에 살던 아름다운 황금빛 곤줄박이가 사라지면서 동구에게 여러 시련이 닥치고 동구는 정원을 떠나게 된다. 동구는 정원을 떠나기 전 황금빛 곤줄박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얻고 희망을 얻는다. 아름답고 영원히 머물고 싶었던 정원이지만 이제 그곳은 기억의 한 조각으로만 남게 되었다. 동구는 순수했던 유년기를 봉인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택한 것이다.

  작가는 비교적 흔한 소재의 성장소설을 세심하고 잔잔히 서술하는 문체로 차별성을 만들었다.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격동하는 70년대 사회라는, 전형적인 갈등과 시대배경을 잘 조화시키면서 누구나 공감 가능한 그리운 유년시절을 그려낸 것이다. 이후 발표한 ‘달의 제단’ 에서도 작가의 이런 성향은 잘 드러난다. 옛날에는 흔한 소재였지만 지금은 보기 드문 ‘신(新),구(舊)의 갈등’을 독특하고 거침없는 필력으로 독자를 휘어잡은 것이다. ‘영주의 귀에서 애벌레가 기어 나오는’ 것 같은 세심한 상황묘사와 ‘안녕, 아름다운 정원. 안녕, 황금빛 곤줄박이’ 와 같은 심리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감동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동구에게 유년기는 마냥 아름다운 기억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제목의 말줄임표도 약간 머뭇거리는 동구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동구는 슬픔을 극복하고 어른이 되는 길을 택했다. 동구에게 유년기는 이제 아름답거나 슬프거나 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그리움으로 정착되었다. 독자가 이 소설을 읽고 감동을 받는 이유는 우리 모두 그리움으로 간직하는 유년시절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동구는 유년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그 마음을 그리움으로 무장하고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더욱 갈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리움이 아닐까?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