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사의 두건수도사의 두건 - 10점
엘리스 피터스 지음, 현준만 옮김/북하우스
  엘리스 피터스에게 1980년 실버대거 상의 영광을 안겨줬던 캐드펠시리즈의 제 3번째 소설이 바로 이 '수도사의 두건'이다.

  내전의 불길이 가신지 얼마 안된 시루즈베리 수도원에 한 영주가 전 재산을 내놓는 조건으로 가족과함께 몸을 의탁한다. 영주의 재산이 꽤 많았던지라 부원장 로버트는 기뻐하며 영주를 맞이하지만 세상경험이 풍부한 캐드펠은 이를 이상하게 여긴다. 과연 여기에는 뒷 사정이 있었는데, 영주의 처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과 영주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것. 자신의 말에 복종하지 않는 양아들에게 화가난 영주는 재산을 빌미로 아들을 협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 아들과 영주가 싸운 어느날 영주가 독살당하고 법의 수호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은 범인이 양아들일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예리한 우리의 캐드펠 수사는 의문을 느끼고 자신이 만든 약물 - 바곳, 즉 '수도사의 두건'이라고도 불리는 약초를 사용한 - 이 범행에 이용되었다는것을 핑계로 이 사건에 뛰어드는데....

  이번 권에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볼거리들이 많다. 우선 캐드펠이 앞권에서 곧잘 읊조리던 '그의 여자'들 중 한명이 눈앞에 나타난다. 나이 60이 다되어도 약간 치기어린 캐드펠 할아버지가 종종 말하던 '결혼할 뻔 했던' 리칠디스가 바로 영주의 부인이었던 것. 그녀의 아들 에드윈을 보며 자신의 아들이 될뻔했다거나 예전의 리칠디스를 떠올린다거나 하며 묘한 기분에 잠기는 캐드펠이 상당히 귀엽게 느껴진다. (이미 올리비에를 향한 작가의 복선은 시작되고 있다)

  두번째로, '성녀의 유골'에서도 나왔던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차이가 상당히 흥미롭다. 모드황후와 스티븐왕간의 권력다툼, 수도원 내 파벌및 지위상승욕구와 더불어 잉글랜드와 웨일즈간 지역색의 차이는 캐드펠 시리즈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테마중 하나이다. 아직까지 웨일즈가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지 않고 그 나름대로의 세력을 유지하고 있던 시기여서 두 지역을 지배하는 지배자도 다르며, 법도 다르고, 심지어 언어와 사람들의 특성마저 차이가 난다. 내가 캐드펠시리즈를 읽으며 즐거웠던 점 중에 하나가 중세 웨일즈인들의 건강한 매력이 너무나 풍부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것에 익숙하고, 외부인을 꺼려하는 폐쇄적인 습성, 그러나 그만큼 공동체 의식이 강한... 그리고 이번 권에서는 특히나 범인을 추리하는데 키 포인트가 되는 서자에의 재산상속권 및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마을회의의 풍습.. 캐드펠의 여유롭고 인간애가 가득한 성격에는 이러한 성장배경이 있었다는것을 생각하면 한층 더 소설 읽기가 즐거워진다.

  또한 작가가 세속을 경험한 종교인, 웨일즈출신 잉글랜드 수도원의 수도사 라는 설정으로 캐드펠을 창조한 것은 주인공을 좀더 자유롭고 열린 사고를 가진 인물로 만드려고 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활동반경또한 넓힐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마찬가지로 약초를 재배하고 약을 다루는 본초학자라는 설정 또한 엄격한 종교적 규율에서 그를 자유롭게 한다. 이번권만해도 캐드펠은 웨일즈어가 가능한 웨일즈 인과 치료사로서 종횡무진 활약하지 않았던가. 이런 사소하고도 치밀한 계산을 하나하나 떠올릴 때마다 작가의 캐드펠 시리즈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 느끼게 된다.

  이번권 역시 캐드펠은 인간애를 바탕으로 두 젊은이를 구원한다. 다소 법에는 벗어나지만 가장 합리적이고 아름다운 방법으로 일을 해결하는 캐드펠에게 우리는 환호하게 된다. 역시 당신은 어쩔수 없군요.. 당신다워요..라며 자조하는 휴 버링가의 즐거운 쓴웃음이 들려오는 듯 하다. 항상 그렇듯, 신은 (캐드펠의 손을 빌려) 최선의 방법으로 일을 해결한다.

 이번권은 약간 추리의 단서가 많지 않아 독자의 상상력에 크게 의존해야하는 점이 있으나 그것 또한 이 시리즈를 읽는 즐거움이라고 하겠다. 정통 추리가 메인이 아닌 어디까지나 스토리 텔링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어떤 마을에서 이런일이 있었는데 사실은 이런 뒷사정이 있었지...라는 기분으로 즐기는게 최고다. 인간의 순간적인 욕망이 어떤 비극을 불러오는지,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엘리스 피터스는 캐드펠을 통해 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전 수도원장의 작은 복수와 후임 수도원장으로 앞으로 캐드펠의 뒤를 확실히 지원해주는 든든한 라덜푸스 수도원장의 부임역시 소소한 볼거리다. 확실히 소악당(?) 로버트 부 수도원장 같은 인물이 있어서 캐드펠 시리즈가 더 재미있어 지는게 아닌가 싶다. 아직까지 캐드펠 시리즈의 초반부인만큼 익숙하지 않은 인물들과 설정이 잔뜩 나오지만, 그만큼 읽고나면 시리즈의 다음 권들을 더 편안하게 즐길 수 있을것이다. 또 엘리스피터스만의 추리방식에도 익숙해져서 점점 범인 추리가 어렵지 않게 (오히려 너무 쉬울정도로!) 느껴지게 될 것이다. 이번권을 통해 캐드펠의 매력에, 역사추리소설의 매력에 한층 더 빠졌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제 17권밖에 안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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