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축일장성 베드로 축일장 - 10점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북하우스

  캐드펠 시리즈의 네번째 성 베드로 축일장에선 드디어 정치적 갈등과 얽힌 사건이 시작된다. 이미 두번째 권 99번째 죽음을 통해 스티븐 왕과 모드황후간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는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시루즈베리는 왕의 충직한 휴 버링가와 함께 스티븐 왕의 영토가 되었고, 모드 황후의 측근들은 모두 축출당했다.

 캐드펠 시리즈의 묘미는 시리즈 전반에 걸쳐 중세 영국 (잉글랜드 및 웨일즈)의 생활사를 실감나는 묘사로 표현한것 뿐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흐름또한 정확하게 포착한 것에 있다. 엘리스 피터스는 다소 생소 할 수 있는 12세기 초반의, 단일한 왕이 지배하던 시기도 아닌 그것도 내전기를 무대로 잡음으로써 혼란스러운 상황을 작품에 교묘하게 이용한다.

 때때로 정치에 무관심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 비해, 이 당시 영국인들에게 정치는 뼈속까지 생존과 관련된 문제였다. 물론 일반 민중들에게는 '자신들을 지켜주고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지도자면 누구든 상관없었겠지만, 그렇기에 비로소 누구편을 드느냐가 중요한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상인, 귀족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캐드펠 시리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중 상당수는 정치적인 부분이 어느정도 작용하고 있다. 특히 '성 베드로 축일장'은 그야말로 정치적 사건이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다.

 이번 권에서는 왕과 황후 사이의 정치 스파이들의 은밀하고도 숨막히는 이야기가 그 중점이다. 이야기 중심에 있는 인물도 있고 조용히 암시만 주고 사라지는 인물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인물에게 각각의 이야기가 있고 그것을 찾아내는것이 독자의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일도 없다는듯한 평온한 성 베드로 축일장(성 베드로 성 바울 수도원에서 매년 개최하는)이지만 그 혼잡한 틈을 타 더욱 은밀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이번권에 드러난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것은 쉬운편에 속한다. 별로 추리할 것도 없다. 그러나 전체적인 사건의 얼개를 찾아내고 정치적 흐름이 어떤식으로 흘러가는가를 지켜보는것은 상당한 재미가 있다. 
  그리고 결코 정치적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교회에서, 그러나 명목상으로는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정치적 중립인 캐드펠과 함께,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또 한명의 인간을 구하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마지막으로 새롭게 부임해온 합리적인 라덜푸스 원장 (앞으로 캐드펠의 활동에 큰 도움이 되는)과 성내 주민들과의 소소한 갈등과 그 해결도, 마지막에 슬며시 웃음짓게하는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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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의 두건수도사의 두건 - 10점
엘리스 피터스 지음, 현준만 옮김/북하우스
  엘리스 피터스에게 1980년 실버대거 상의 영광을 안겨줬던 캐드펠시리즈의 제 3번째 소설이 바로 이 '수도사의 두건'이다.

  내전의 불길이 가신지 얼마 안된 시루즈베리 수도원에 한 영주가 전 재산을 내놓는 조건으로 가족과함께 몸을 의탁한다. 영주의 재산이 꽤 많았던지라 부원장 로버트는 기뻐하며 영주를 맞이하지만 세상경험이 풍부한 캐드펠은 이를 이상하게 여긴다. 과연 여기에는 뒷 사정이 있었는데, 영주의 처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과 영주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것. 자신의 말에 복종하지 않는 양아들에게 화가난 영주는 재산을 빌미로 아들을 협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 아들과 영주가 싸운 어느날 영주가 독살당하고 법의 수호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은 범인이 양아들일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예리한 우리의 캐드펠 수사는 의문을 느끼고 자신이 만든 약물 - 바곳, 즉 '수도사의 두건'이라고도 불리는 약초를 사용한 - 이 범행에 이용되었다는것을 핑계로 이 사건에 뛰어드는데....

  이번 권에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볼거리들이 많다. 우선 캐드펠이 앞권에서 곧잘 읊조리던 '그의 여자'들 중 한명이 눈앞에 나타난다. 나이 60이 다되어도 약간 치기어린 캐드펠 할아버지가 종종 말하던 '결혼할 뻔 했던' 리칠디스가 바로 영주의 부인이었던 것. 그녀의 아들 에드윈을 보며 자신의 아들이 될뻔했다거나 예전의 리칠디스를 떠올린다거나 하며 묘한 기분에 잠기는 캐드펠이 상당히 귀엽게 느껴진다. (이미 올리비에를 향한 작가의 복선은 시작되고 있다)

  두번째로, '성녀의 유골'에서도 나왔던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차이가 상당히 흥미롭다. 모드황후와 스티븐왕간의 권력다툼, 수도원 내 파벌및 지위상승욕구와 더불어 잉글랜드와 웨일즈간 지역색의 차이는 캐드펠 시리즈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테마중 하나이다. 아직까지 웨일즈가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지 않고 그 나름대로의 세력을 유지하고 있던 시기여서 두 지역을 지배하는 지배자도 다르며, 법도 다르고, 심지어 언어와 사람들의 특성마저 차이가 난다. 내가 캐드펠시리즈를 읽으며 즐거웠던 점 중에 하나가 중세 웨일즈인들의 건강한 매력이 너무나 풍부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것에 익숙하고, 외부인을 꺼려하는 폐쇄적인 습성, 그러나 그만큼 공동체 의식이 강한... 그리고 이번 권에서는 특히나 범인을 추리하는데 키 포인트가 되는 서자에의 재산상속권 및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마을회의의 풍습.. 캐드펠의 여유롭고 인간애가 가득한 성격에는 이러한 성장배경이 있었다는것을 생각하면 한층 더 소설 읽기가 즐거워진다.

  또한 작가가 세속을 경험한 종교인, 웨일즈출신 잉글랜드 수도원의 수도사 라는 설정으로 캐드펠을 창조한 것은 주인공을 좀더 자유롭고 열린 사고를 가진 인물로 만드려고 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활동반경또한 넓힐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마찬가지로 약초를 재배하고 약을 다루는 본초학자라는 설정 또한 엄격한 종교적 규율에서 그를 자유롭게 한다. 이번권만해도 캐드펠은 웨일즈어가 가능한 웨일즈 인과 치료사로서 종횡무진 활약하지 않았던가. 이런 사소하고도 치밀한 계산을 하나하나 떠올릴 때마다 작가의 캐드펠 시리즈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 느끼게 된다.

  이번권 역시 캐드펠은 인간애를 바탕으로 두 젊은이를 구원한다. 다소 법에는 벗어나지만 가장 합리적이고 아름다운 방법으로 일을 해결하는 캐드펠에게 우리는 환호하게 된다. 역시 당신은 어쩔수 없군요.. 당신다워요..라며 자조하는 휴 버링가의 즐거운 쓴웃음이 들려오는 듯 하다. 항상 그렇듯, 신은 (캐드펠의 손을 빌려) 최선의 방법으로 일을 해결한다.

 이번권은 약간 추리의 단서가 많지 않아 독자의 상상력에 크게 의존해야하는 점이 있으나 그것 또한 이 시리즈를 읽는 즐거움이라고 하겠다. 정통 추리가 메인이 아닌 어디까지나 스토리 텔링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어떤 마을에서 이런일이 있었는데 사실은 이런 뒷사정이 있었지...라는 기분으로 즐기는게 최고다. 인간의 순간적인 욕망이 어떤 비극을 불러오는지,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엘리스 피터스는 캐드펠을 통해 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전 수도원장의 작은 복수와 후임 수도원장으로 앞으로 캐드펠의 뒤를 확실히 지원해주는 든든한 라덜푸스 수도원장의 부임역시 소소한 볼거리다. 확실히 소악당(?) 로버트 부 수도원장 같은 인물이 있어서 캐드펠 시리즈가 더 재미있어 지는게 아닌가 싶다. 아직까지 캐드펠 시리즈의 초반부인만큼 익숙하지 않은 인물들과 설정이 잔뜩 나오지만, 그만큼 읽고나면 시리즈의 다음 권들을 더 편안하게 즐길 수 있을것이다. 또 엘리스피터스만의 추리방식에도 익숙해져서 점점 범인 추리가 어렵지 않게 (오히려 너무 쉬울정도로!) 느껴지게 될 것이다. 이번권을 통해 캐드펠의 매력에, 역사추리소설의 매력에 한층 더 빠졌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제 17권밖에 안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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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번째 주검99번째 주검 - 10점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북하우스
  캐드펠 시리즈를 통틀어 많은 주변인물이 등장하지만, 캐드펠이 가장 믿을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친구는 단연 휴 버링가일 것이다. 보통 추리소설에는 탐정뿐아니라 탐정의 조수가 등장하지 않는가? 그러나 대부분의 조수들이 착하고 정의로운 심성을 지녔으며 탐정의 손과발이 됨과 동시에 가끔씩 탐정에게 영감을 주는 - 그런 역할을 하는것에 비해 휴 버링가는 캐드펠과 함께 추리하는- 또다른 머리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기존의 조수역에 들어맞는 역할이라고 하면 마크수사나 오스윈수사같은 어린 수사들을 꼽을 수 있을것이다. 휴 버링가는 캐드펠 못지않은 두뇌와 젊은 행동력, 또한 행정적 권한까지 가지고 있어 캐드펠이 필요할때 언제든지 제2의 머리, 손, 발이 되어준다. 그야말로 전적으로 믿을수 있는 친구다. (친구에 나이차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휴 버링가가 처음 등장하는것이 이 99번째 주검. 시루즈베리를 차지하기위한 전투 후 스티븐왕이 명령한 98명(사실 원작은 94명인데 출판사측에서 흥미를 돋우기 위해 고의로 숫자를 바꿨다)의 죽음.. 그러나 그곳에는 99명의 시체가 있었다. 그 교묘하게 숨겨진 살인의 진상을 캐드펠이 파헤친다는것이 이번권의 내용.

  99번째 주검은 또한 본격적으로 정치적 배경이 드러나게 되는 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스티븐왕과 모드 황후라는 두개의 내전 세력과 모든 귀족들이 두 파로 갈려있는 상황속에서 민중들은 전쟁에 휘말린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은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이리저리 변하며 각종 에피소드들의 배경이 된다. 정세의 변화가 상당히 흥미롭게 에피소드에 이용되고 있으니 그쪽도 주목해서 보길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정세의 흐름에 민중들은 다만 휩쓸릴뿐이다. 그들에겐 스티븐왕이나 모드황후나 상관없다. 오직 자신들이 안전하게 먹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쪽이 훨씬 기쁘다. 캐드펠 또한 어느 한쪽의 편을 들지 않고 가능한한 모든 인간에게 공정하려 노력한다.

  여느 캐드펠 시리즈와 같이 이번편도 이러한 정치적 상황과 인간의 탐욕, 질투가 불러낸 비극을 사랑과 용기로 극복하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다. 그리고 한가지 더하자면 캐드펠과 휴가 벌이는 신경전- 두뇌싸움이 상당히 흥미롭다. 앞으로 더말할 나위없는 친우가 되는 이 두사람이 서로를 인정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는지 독자들은 이번 권에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수사이면서 약간은 느슨하고, 약간은 약삭빠르며, 냉철과 감정을 겸비한 캐드펠의 매력과 활약에 다시한번 즐거워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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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문의 비밀 -상열녀문의 비밀 -상 - 10점
김탁환 지음/민음사
 
  방각본 살인사건에서 5년이 지난 후의 그들을, 긴 기다림 끝에 만날 수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하루만에 상.하 권을 다 읽고, 머리속에 자주빛 안개가 낀 기분으로 지금 자판을 두드린다.
 
  백탑파 시리즈의 두번째인 이번 소설에서는 전작보다 한층 더 깊어진 그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었다. 전작이 약간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좀더 편안하게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듯한 느낌이다. '열녀문의 비밀' 에서, 작가는 '열녀'를 다시 정의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공맹의 도를 따른 열녀가 아닌, 열녀를 넘어서는 삶에 대해 말한다. 시문에 능하고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농사를 짓고 장사를 하며 자신이 배운것을 삶에 적용시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여인. 그러나 그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행복까지도 찾아서 살아 가는 긍정적인 여성상에 대해 작가는 화광의 입을 통해 재 평가 내리고 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열녀이자 훌륭한 여성상으로 평가하는 사임당이나 난설헌에 비해 조악하다고 할 수 있는 삶이지만, 훨씬 행복한 삶이 아닐까.  책속의 '아영'은 현대를 살아가는 그 어느 여성 못지 않은 앞선 시각으로 시대를 살아간다.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았던 여성이 있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읽는 내내 마음속 한 구석이 시원했던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번권에는 전권에 비해 '야소교도'라 불리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삶이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아직은 그 불꽃이 작고 점차 불꽃을 키워나가는 단계이지만, 아마 후작중 한권은 좀더 본격적인 박해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이정도로 복선을 깔아두었는데 그냥 지나칠 작가는 아닌것 같고..

  주인공인 청전의 회상조도 왠지 가슴에 오래 남는다. 중간 중간 회상조로 기술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특히 본문에 서술하고 있는 지인들이 죽고 백탑파의 꿈이 흩어진 '지금'의 목소리로 말하는 부분이 너무 쓸쓸하게 느껴져서 가슴이 아팠다.

  그렇지만 역시 읽으면서 즐거운 부분이 더 많았다. 우선 생소하고도 좋은 어감의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여 옛 대화의 느낌을 잘 살렸다는것. 일일히 괄호를 달아 뜻을 해석해 놓아서 이해하는데는 전혀 문제는 없었다. 그 중 몇개는 적어놓고 나중에 써먹고 싶을 정도로... 또 확실히 작가가 영상물을 염두에두고 글을 쓰고 있다고 한 만큼, 배경이나 상황묘사가 너무나 아름답게 나온다.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18세기 조선에서 살고있는것만 같다. 아니, 실제로 너무 살아보고싶다.
 
  게다가 화광과 청전의 사귐이 더 깊어진 것이 무엇보다 가장 흐뭇하다. 시대를 떠나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가치중의 하나인 우정과 같은 요소는 소설의 즐거움을 두배로 늘려준다. 그리고 그밖에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 아직까지 언급되지 않는것으로 보아 화광은 결혼을 안한것이 아닐까? (실제로 화광은 자신의 아이가 자신과같은 서얼의 슬픔을 맛보게 하기 싫다고 말하고 있기도 하고 ) 청전은 확실히 전편에서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있다고 나오지만....  작가의 흐름에 독자는 쫓아가기 바빠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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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fact)과 허구(fiction)가 합쳐진 '팩션'이란 장르가 요즘 뜨고있다. 그냥 허구로만 이루어진 소설에 이런 저런 역사적인 사실들을 접목시켜 새로운 재미를 탄생 시킨것이다. 사실 이러한 팩션의 기법은 예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요즘 다시 뜨고있는것은 역시 댄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사실과 허구가 너무 절묘하게 결합이 되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구분하기 조차 어려운 '다빈치 코드'는 독자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 이후로도 '4의 규칙'같은 소설들이 나오면서 당분간 팩션의 붐은 계속될 듯하다.

  왜 이렇게 '팩션'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냐 하면, 바로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역사 추리 (historical mistery)'가 바로 그러한 팩션 기법을 주(主)로 쓰고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역사 추리'라는 장르는 외국에서는 많이 자리잡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는 많이 인식되지 않은 장르이다. 아직 정확하게 정의되지도 않았고, 요즘에는 여기 저기에도 걸핏하면 역사 추리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그러나 나는 정통적인 역사 추리소설은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배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추리소설' 이라고 생각한다. 즉, 위에도 언급했던 '다빈치 코드'나 '4의 규칙' 같은 소설은 아무리 과거 사실이 나와도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역사 추리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역사 추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1. 과거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2. 실존인물과 허구적인물이 동시에 등장하며 3. 각종 사건에 대한 추리 가 가능해야 한다고 본다.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앨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시리즈'와 같이 중세 수도원을 무대로한 추리소설, 고대 로마 제정시절을 바탕으로 한 유쾌한 탐정 '팔코 시리즈', 시오노 나나미의 16세기 로마의 세도시를 무대로한 '세 도시 이야기 시리즈' 또 17세기 영국을 무대로한 이안 피어스의 '핑거포스트,1663', 19세기 미국을 배경으로 한 매튜 펄의 '단테 클럽', 한국의 정조시대를 무대로한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 , 김탁환의 '백탑파 시리즈' 등은 모두 실제 있었던 역사 사실속에서 허구적 인물과 실존적 인물이 뒤섞여 등장하는 추리소설, 즉 역사 추리소설이다. 특별히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현대로 끌어내와 추리하지 않아도 이미 이 소설들은 배경에서부터 매력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소설속의 케릭터들이 하는 행동, 말, 사고방식등이 모두 그 시대를 은연중에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로서는 과거의 '선조님들'을 즐겁게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추리'라는 요소까지 섞이면 그 매력이 증가한다. 원래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오랫동안 넓게 사랑받고 있기도 하거니와, 현대의 과학적인 수사 방법과는 달리, 우리 역사 추리소설속의 주인공들은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추리를 하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무식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지금 사람들보다 더 현명하게 추리하고 더 나아가 삶에 대한 성찰까지 하는 그들을 바라보면 신선한 충격에 사로잡힌다.

  개인적으로 역사 추리소설의 역사와 추리의 비율은 대략 7:3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훌륭한 역사 추리소설은 추리적 요소도 훌륭하게 들어가 있지만, 내가 말하고 싶어하는것은 단순히 추리를 뛰어넘는 재미가 역사 추리소설에는 있다는 뜻이다. 정통 추리물보다 다소 추리적인 재미가 적더라도 전체적인 소설의 완성도가 떨어지는것은 아니며, 오히려 적당히 역사적 요소와 추리적 요소를 머리 아프지 않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소설과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매력적인 장르는 없다.

또다른 역사추리 소설의 매력중 하나는 바로 실존인물과 허구적인물의 혼재이다. 대체로 역사 추리소설의 주인공은 허구적인물, 또는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하지만 그리 유명하지 않아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일 경우가 많고 주인공의 주변인물로는 실존인물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작가는 주인공을 허구 인물로 내세움으로써 자신이 표현하고 싶었던 내용을 주인공을 통해 마음껏 표현할 수 있고 주변인물을 실존인물로 함으로써 훨씬 사실감을 줄 수 있다. 주인공이 완전한 실존인물일 경우에는 표현의 제약이 있고 더 나아가 '왜곡'했다는 평을 들을 수도 있기때문에 표현에 있어 조심스러워진다. 그러나 주변인물의 경우에는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실존 인물의 가치관의 틀 안에서 행동하는 것 만으로도 이야기의 흐름을 훨씬더 실감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작가는 가능하면 많은 실존 인물들을 소설에 등장시킴으로써 실감나는 효과를 극대화하려 한다. 그리고 독자는 허구적 인물과 실존 인물의 교류속에서 마치 자신이 실존인물을 만난 것인양 느끼게 되고 또 잘 모르는 인물인 경우에는 배경지식을 찾아보기도 하면서 소설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 지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글을 쓰는 나 자신도 많은 역사 추리소설을 접해본 것은 아니다. 역사 추리소설들을 많이 아는것도 아닐 뿐더러 우리나라에 번역되는 외국 소설이나 우리나라 소설 자체도 많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앨리스 피터스 추모소설인 '독살에의 초대'를 읽고나서 '외국에는 이렇게 많은 역사 추리소설 작가가 있구나' 라는 생각에 충격이 이루말할 수 없었다. 요즘들어 역사 추리소설의 가치가 급부상 되면서 뜨거운 관심이 모여지고 있는 듯하다. 솔직히 갑자기 끓고, 갑자기 식는 이러한 관심이 반가운 것만은 아니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에서도 역사 추리소설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함께 훌륭한 소설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외국의 역사 추리 소설들을 많이 번역해 주는것 역시 대 환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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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포스트, 1663 1핑거포스트, 1663 1 - 10점
이언 피어스 지음, 김석희 옮김/서해문집
  장미의 이름에 이은 수작! .... 이젠 너무 많다. 솔직히 내가 아는 왠만한 역사 추리소설은 다 한번씩 움베르트 에코를 거론하며 홍보하니 이젠 너무 식상하달까. 그렇지만, 이안 피어스의 핑거포스트 1663 (원제 : An Instance of the Fingerpost ) 또한 그러한 찬사를 받을만한 수작이다.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벌어진 한 살인사건에 대해 4명의 증인이 각자 다른 진술을 한다. 청교도 혁명을 일으킨 크롬웰이 죽고 찰스2세가 다시 왕정복고를 이루어낸 때, 국교도가 아닌 천주교인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지고 끊임없는 반란의 조짐이 각지에서 일어나던 혼란한 시대상황은 실로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서술자로 등장하는 '마르코 다 콜라'의 글을 읽으며 나는 솔직하면서도 담백한 그의 문체에 빠져들어갔고 그의 증언을 다 읽을 즈음에는 완전히 매력적인 인물로 콜라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솔직히 뒤에 나오는 잭의 증언, 그리고 특히나 더 월리스 박사의 증언을 읽을 때에는 커다란 충격에 사로잡혔다. 한점 의심할 점이 없을것 같은 명랑한 베네치아 신사 콜라가 그렇게 극악무도한 살인마로 비추어질 수 있다니. 솔직히 그로브 박사의 죽음에 대해 사라의 고백만듣고 '진짜 그녀가 범인이니까 자수했겠지'라고 믿는 콜라를 보면서 우스웠지만, 그렇게 믿는것처럼 진술한 콜라이기에 너무 순수해보여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 소설에서 살인사건은 커다란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네명의 증언에서 그로브 박사의 죽음은 단순히 어떤 큰 흐름속에 일어난 작은 일일 뿐이다. 각각의 증언이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고, 살인사건은 그들이 어떤 일을 하던 중에 어쩌다 일어난 배경처럼 서술되어 있다. 그렇기에 누가 그로브 박사를 살해했는가에 대해 아무도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고 그냥 한사람을 각자 범인으로 지목한 채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네명의 진술은 살인사건으로 얽혀있을 때 비로소 진가를 발휘한다.

  옥스퍼드의 사학자로 나오는 우드의 증언은 정말 결정적이다. 범인도 확실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네명의 이야기를 종합할만한 놀라운 사건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사람의 이야기에 살인사건말고 공통으로 등장하는 중요 인물 '사라 블런디'에 관한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네명의 진술 가운데서 가장 엇갈리는것도 바로 사라에 대한 인상이다. 누구에겐 요녀로, 버릇없는 하층민으로, 지적인 인물로, 심지어 여신으로까지 보이는 이 여인은 과연 진짜 어떤 인물이었을까. 모든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지만 증언하지 않는 사라블런디의 증언이 하나더 추가되어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핑거 포스트가 아닐까.

  사람들은 각자 보고싶은 대로 사건을 보고 납득한다. 다른 사람의 증언에서 어리숙한 바보로 나오는 앤소니 우드가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고 심지어 나름대로 추리까지 해 사건의 본질에 다가간 것을 보라! 그러나 1권 뒤에 있는 역자의 말에 보면, 우드의 증언이 핑거포스트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또다른 우상일지도 모른다고 넌지시 일러두고 있다. 과연, 그 는 많은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또한 '자신의 관점'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말이지! 한사람의 증언에서는 알 수 없는 여러 사실들을 조합해서 사건의 본질에 다가가는 형식이 참 참신한 소설이다. 김석희님의 번역도 아주 매끄러웠고 거의 모든 면에서 만족한 소설이다. 콜라의 영국에 대한 냉소나,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여러 학자들에 대한 언급, 또 의학,신학,정치,경제,사회등 다방면에 걸친 대화등이 시대배경을 아주 사실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특히 옥스퍼드 거리묘사는 실제로 옥스퍼드에 와있는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단 한가지 아쉬운점은, 이 책이 나오기전에 번역되었던 '옥스퍼드의 4증인'에서는 2권 뒤에 있던 역자의 말이 '핑거포스트, 1663'에서는 1권 뒤에 있다는것이다. 멋모르고 1권 뒤에 있는 역자의 말을 읽었다가는 스포일러를 당하기 십상!!! 실제로 나도 '아이쿠'했다. 출판사에선 미처 그것까지 고려를 못한 것일까. 책의 특성상 아주 많이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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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유골성녀의 유골 - 10점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북하우스
  나에게 있어 캐드펠 시리즈는 각별하다. 나는 이 작품을 2003년에 처음 접했는데, 그 전까지는 역사추리라는 장르가 있는줄도 알지 못했다. 역사소설도 좋아하고 추리소설도 좋아하지만 그 두가지를 합한 팩션(fact+fiction)이라니! 그야말로 내가 원하던 장르였던것이다. 나는 캐드펠에게 반해 20권이라는 다소 많은 이 시리즈를 금세 다 읽어버렸고 이후로도 역사추리소설이라면 관심을 갖고 접하게 되었다.

  요즘들어 '다빈치 코드'같이 역사적 미스테리를 후대에 파헤치게 된다는 내용의 작품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런 작품에 '역사추리'라는 수식어를 붙이는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국내에 '역사추리'라는 장르가 보편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역사추리'라고 소개되는 작품중에 진정한 역사추리가 몇개 없는것을 보면 자칫잘못하다간 진짜 역사추리소설이 설자리가 사라지게 되는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정의하는 '역사추리'라는 장르는 실제 존재했던 역사적 상황안에서, 실존했던 인물과 허구적 인물이 공존하며, 어떠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즉 다시말하면 현대의 인물이, 과거의 사건을 해결하는건 역사추리가 아니다. 그건 차라리 스릴러나, 탐험소설이라고 불리는게 더 적합할 것이다. 말이 조금 길어졌는데, 자세한내용은 내가 예전에 작성했던 포스팅을 참고하였으면 좋겠다. 이러한 역사추리물중에도 단연 완성도있게 돋보이는 작품이 바로 이 캐드펠 시리즈다.

  엘리스 피터스가 1977년부터 20여년에 걸쳐 총 20권을 펴낸 캐드펠 시리즈는 12세기 영국, 시로프셔 주의 시루즈베리라는 마을을 중심으로 수도사 캐드펠이 혼란스러웠던 중세에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해결해나가는 이야기다. 주인공 캐드펠은 실존 인물로 ,수도사임에도 불구하고 편협하지 않은 종교관과 따뜻한 인간애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60대의 노인이지만 수도원 생활을 시작한 지는 20년이 채 안되는 캐드펠은 과거 십자군원정을 갔다왔을정도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그때를 바탕으로 한 민첩한 몸놀림과 냉철한 이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신에 대한 믿음, 약초에 대한 뛰어난 지식 등은 그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다. 작가의 손에서 재탄생하여 중세적 인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정도로 유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캐드펠. 신성과 세속과 같은 종교적 문제 뿐만아니라 잉글랜드와 웨일즈, 스티븐왕과 모드 황후라는 지역적,정치적 문제에서까지 캐드펠은 현명하고도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다. 혹자는 이를 두고 엘리스 피터스가 완벽한 중세 인물을 재현하는데 실패했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그가 더 돋보이는것이 아닐까. 그리고 과연 중세인들중에 그와같은 인물이 없었다고 그 누가 잘라 말할 수 있겠는가.
  
  한편 캐드펠 시리즈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것은 작가의 고향이기도 하며 현재까지 남아있는 마을인 잉글랜스 시로프셔 주의 시루즈베리에대한 묘사다. 마을과 여러 건축물들, 전원적이고 아름다운 풍경등의 묘사는 너무나 실감나도록 당시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독자는 시루즈베리 수도원과 시루즈베리 시내, 산과 강과 들판을 캐드펠과 함께 지나다니며 시루즈베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시루즈베리는 캐드펠때문에 관광명소가 되었다)

  성녀의 유골은 그러한 캐드펠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이다. 주인공인 캐드펠이 첫 등장하는것이니만큼 작가는 캐드펠이 어떤 인물이라는것을 보여주는데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캐드펠이 몸담고 있는 성 베네딕트 회 시루즈베리 수도원은, 야심만만한 부수도원장 로버트가 수도원과 자신의 지위를 강화시키기 위해 성녀의 유골을 모셔오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들은 웨일즈에 있는 위니프레드 성녀의 유골을 찾아 가지만 웨일즈인들은 성녀는 자신들의 것이라며 반발한다. 그 와중에 마을의 지주가 살해당하고, 로버트는 성녀의 저주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렇게 말하면 간단한것같지만, 사실 이 이야기의 플롯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교회내 권력에 대한 집착, 기적과 계시, 잉글랜드인과 웨일즈인간의 차이 및 갈등, 지주와 자유민과 농노, 사랑과 질투 등등이 포함되며 이야기는 한층 더 복잡함을 띤다.

  캐드펠시리즈는 완벽하게 재현해 낸 중세시대 영국과 영국인들, 그리고 그 와중에 벌어지는 각종 사건 사고와의 얼개, 그러나 그것을 해결하는데 있어 시공간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사랑과 믿음, 인간애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만들어진 하나의 걸작이다. 역사추리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 세계'에 푹 빠지는것이 상당히 익숙할 수 있으나 아직 그것이 어색하다면 차근차근 역사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으로 접근해 보길 권한다. 또한 사건을 해결할 때 현대의 수사방법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생각해가면서 읽는다면 더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것이다. 지문도 DNA도 추출할 수 없는 과거에 과거인들이 어떤 지혜를 가지고 사건을 해결하는지, 또 그만큼 인간에 대한 신뢰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게 된다면 '역사 추리소설'의 매력을 찾아낸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인공 캐드펠이 각권마다 새로이 보여주는 또다른 매력역시 찾아내길 바라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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