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나의 아름다운 정원 - 10점
심윤경 지음/한겨레출판
   누구에게나 유년시절은 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름답게 채색되기도 하고 얼룩지고 빛바랜 청사진이 되기도 한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이해하고 보호막을 깨면서 사람은, 유년을 탈피하여 어른이 되어간다. 어른이 된 후 회상하는 유년시절이 행복함으로 기억될지, 괴로움으로 기억될지는 사람마다 다르나 단한가지 누구나 갖는 감정이 있다. 그리움. 그것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린시절에 대한 추억이다.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정원'은 그러한 그리움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시대가 다르고 성별이 다르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주인공 한동구에게 동화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동구를 통해 어릴 적의 자신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구는 아주 평범한 아이이다. 부모님이 안 계신 것도 사회의 냉혹함을 일찍부터 깨달은 아이도 아니다. 이렇게 평범한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동구와 함께 호흡하며 독자는 어른으로 성장하기 이전의 유년시절을 아련히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동구의 동생, 영주가 태어난 1977년부터 영주가 죽은 후인 1981년까지의 5년을 중심으로 동구의 내면적 성장에 주목한 성장소설이다. 언제나 며느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고집 센 할머니와 겉으로는 참지만 속에서는 맞대응 하는 어머니,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가장의 권위를 앞세운 폭력으로 가정을 애써 안정시키려는 아버지. 이런 고부갈등, 권위주의에 억눌리며 동구는 자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구에게 삶의 희망이 되는 두 사람이 있으니 바로 동생 영주와 박영은 선생님이다. 영주는 어린아이답지 않은 애정표현과 사랑스러움으로 폭발할 것 같은 가정 내에서 일렁이는 봄바람 같은 존재가 되었고, 박영은 선생님은 난독증을 앓던 동구에게 글자를 가르쳐주고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야를 가르쳐준 인생의 스승이다. 후에 동구도 회고하듯 영주와 박영은 선생님과 같이 지내던 이 5년간은 동구의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했던 시기- 유년기에 대한 그리움으로 남게 된다.

  또한 동구의 유년기는 정치적으로도 아주 민감한 시기이기도 하다. 10.26사태, 12.12,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건들을 어린 동구는 경험한다. 그러나 인왕산 자락의 동구에게는 ‘대통령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탱크가 있고’, ‘박영은 선생님이 데모하는’ 정도의 일이다. 작가는 이태혁과 주리삼촌이라는 등장인물을 통해 잠시 시대를 논하지만, 동구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다. 시대가, 동경하는 박영은 선생님을 앗아갈 때야말로 동구는 데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사회의 눈’을 갖게 된다.

  동구는 자신의 의견을 겉으로 잘 표현할 수 없는 만큼 내면의 자아가 성숙해 있다. 각각의 상황과 주변 인물들에 대해 단순히 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의젓한 태도를 보이며 그 누구보다도 세심하게 나름대로의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아이일 뿐이다. 그러한 동구에게 영주의 죽음과 박영은 선생님의 실종은 순수했던 유년기를 탈피해 성장해야만 하는 선택을 강요한다. 주변의 어른을 아무도 의지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동구는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을 깨닫는다. 소설에서 동구가 좋아하는 삼층집의 정원은 아름다운 유년기를 상징한다. 그곳에는 모든 것이 있다. 작고 하찮은 것 에서부터 크고 아름다운 것까지, 그 모든 것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그러나 그 곳에 살던 아름다운 황금빛 곤줄박이가 사라지면서 동구에게 여러 시련이 닥치고 동구는 정원을 떠나게 된다. 동구는 정원을 떠나기 전 황금빛 곤줄박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얻고 희망을 얻는다. 아름답고 영원히 머물고 싶었던 정원이지만 이제 그곳은 기억의 한 조각으로만 남게 되었다. 동구는 순수했던 유년기를 봉인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택한 것이다.

  작가는 비교적 흔한 소재의 성장소설을 세심하고 잔잔히 서술하는 문체로 차별성을 만들었다.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격동하는 70년대 사회라는, 전형적인 갈등과 시대배경을 잘 조화시키면서 누구나 공감 가능한 그리운 유년시절을 그려낸 것이다. 이후 발표한 ‘달의 제단’ 에서도 작가의 이런 성향은 잘 드러난다. 옛날에는 흔한 소재였지만 지금은 보기 드문 ‘신(新),구(舊)의 갈등’을 독특하고 거침없는 필력으로 독자를 휘어잡은 것이다. ‘영주의 귀에서 애벌레가 기어 나오는’ 것 같은 세심한 상황묘사와 ‘안녕, 아름다운 정원. 안녕, 황금빛 곤줄박이’ 와 같은 심리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감동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동구에게 유년기는 마냥 아름다운 기억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제목의 말줄임표도 약간 머뭇거리는 동구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동구는 슬픔을 극복하고 어른이 되는 길을 택했다. 동구에게 유년기는 이제 아름답거나 슬프거나 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그리움으로 정착되었다. 독자가 이 소설을 읽고 감동을 받는 이유는 우리 모두 그리움으로 간직하는 유년시절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동구는 유년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그 마음을 그리움으로 무장하고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더욱 갈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리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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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문의 비밀 -상열녀문의 비밀 -상 - 10점
김탁환 지음/민음사
 
  방각본 살인사건에서 5년이 지난 후의 그들을, 긴 기다림 끝에 만날 수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하루만에 상.하 권을 다 읽고, 머리속에 자주빛 안개가 낀 기분으로 지금 자판을 두드린다.
 
  백탑파 시리즈의 두번째인 이번 소설에서는 전작보다 한층 더 깊어진 그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었다. 전작이 약간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좀더 편안하게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듯한 느낌이다. '열녀문의 비밀' 에서, 작가는 '열녀'를 다시 정의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공맹의 도를 따른 열녀가 아닌, 열녀를 넘어서는 삶에 대해 말한다. 시문에 능하고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농사를 짓고 장사를 하며 자신이 배운것을 삶에 적용시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여인. 그러나 그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행복까지도 찾아서 살아 가는 긍정적인 여성상에 대해 작가는 화광의 입을 통해 재 평가 내리고 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열녀이자 훌륭한 여성상으로 평가하는 사임당이나 난설헌에 비해 조악하다고 할 수 있는 삶이지만, 훨씬 행복한 삶이 아닐까.  책속의 '아영'은 현대를 살아가는 그 어느 여성 못지 않은 앞선 시각으로 시대를 살아간다.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았던 여성이 있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읽는 내내 마음속 한 구석이 시원했던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번권에는 전권에 비해 '야소교도'라 불리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삶이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아직은 그 불꽃이 작고 점차 불꽃을 키워나가는 단계이지만, 아마 후작중 한권은 좀더 본격적인 박해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이정도로 복선을 깔아두었는데 그냥 지나칠 작가는 아닌것 같고..

  주인공인 청전의 회상조도 왠지 가슴에 오래 남는다. 중간 중간 회상조로 기술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특히 본문에 서술하고 있는 지인들이 죽고 백탑파의 꿈이 흩어진 '지금'의 목소리로 말하는 부분이 너무 쓸쓸하게 느껴져서 가슴이 아팠다.

  그렇지만 역시 읽으면서 즐거운 부분이 더 많았다. 우선 생소하고도 좋은 어감의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여 옛 대화의 느낌을 잘 살렸다는것. 일일히 괄호를 달아 뜻을 해석해 놓아서 이해하는데는 전혀 문제는 없었다. 그 중 몇개는 적어놓고 나중에 써먹고 싶을 정도로... 또 확실히 작가가 영상물을 염두에두고 글을 쓰고 있다고 한 만큼, 배경이나 상황묘사가 너무나 아름답게 나온다.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18세기 조선에서 살고있는것만 같다. 아니, 실제로 너무 살아보고싶다.
 
  게다가 화광과 청전의 사귐이 더 깊어진 것이 무엇보다 가장 흐뭇하다. 시대를 떠나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가치중의 하나인 우정과 같은 요소는 소설의 즐거움을 두배로 늘려준다. 그리고 그밖에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 아직까지 언급되지 않는것으로 보아 화광은 결혼을 안한것이 아닐까? (실제로 화광은 자신의 아이가 자신과같은 서얼의 슬픔을 맛보게 하기 싫다고 말하고 있기도 하고 ) 청전은 확실히 전편에서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있다고 나오지만....  작가의 흐름에 독자는 쫓아가기 바빠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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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천사들 2새벽의 천사들 2 - 10점
카야타 스나코 지음, 한가영 옮김, 스즈키 리카 그림/대원씨아이(단행본)
  전에 어떤곳에서 스즈키 리카님의 새벽의 천사들 그림이 싫다고 한 글을 본적이 있다. 정확히 어디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뭐 오키 마미야님의 '리'를 보다가 새벽의 천사들의 '리'를 보면 적응이 안될만도 하다. 그렇지만 일러스트레이터가 바뀌는것도 신선하고 해서 난 별로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뭐랄까 오키님의 그림은 조금 화려해서 이미지가 너무 굳어져 버린달까. 이렇게 다른 그림을 보면 조금 케릭터가 다르게 느껴져서 미처 생각지 못한 이미지들이 나타나 즐겁다.

  1권이 대략적인 내용설명이었다면 2권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온다. 특히 '셰라'가 좀더 중점적으로 , 아예 거의 '셰라'의 이야기라고 해도 상관없을듯. 그래서인지 델피니아적 이야기들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정말 누군가 델피니아를 보지 않고 새벽의 천사들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무슨말인지 도통 알아볼 수 없는 내용들이 곳곳에 있다. 팬의 입장에선 그렇게라도 나와주는게 너무 고맙지만. 스칼렛 위저드와 델피니아 전기를 하나로! (무슨 캐치 프레이즈 같다) 즐길수 있어서 거의 400페이지가까이 되는 분량이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기만 할 따름이었다. 새로운곳에 적응하려는 꼬마 4인방이 너무 귀여워서 보는내내 너무 행복했달까. 또 리의 아버지로 거의 회상으로만 나오던 아말록이 좀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비춰지는것도 인상적이었다. 델피니아에서는 맛보기로만 보여줬던 리와 루의 과거이야기도 꽤 많이 나오고... 그래, 역시 이건 델피니아 외전이야.

  이렇게 사랑스러운 먼치킨이 또 어느 소설에 있을까. 이건 아무래도 작가의 필력이대단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솜씨다. 차라리 루는 조금 부담스러울 지라도 리는 전혀! 아무래도 그나마 보통 인간이어서 그런걸까. (그렇게 따지면 보통 인간인데 그걸 다 해낼수있는 리가 더 무섭지만) 거의 한권에 하나씩 커다란 에피소드가 터져주고 있는 시점에서, 이번권이 델피니아 중심이었다면 다음권에는 스칼렛의 이야기가 중심이 될 것 같다. 젬과 해적의 부활이라니 말다했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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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포스트, 1663 1핑거포스트, 1663 1 - 10점
이언 피어스 지음, 김석희 옮김/서해문집
  장미의 이름에 이은 수작! .... 이젠 너무 많다. 솔직히 내가 아는 왠만한 역사 추리소설은 다 한번씩 움베르트 에코를 거론하며 홍보하니 이젠 너무 식상하달까. 그렇지만, 이안 피어스의 핑거포스트 1663 (원제 : An Instance of the Fingerpost ) 또한 그러한 찬사를 받을만한 수작이다.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벌어진 한 살인사건에 대해 4명의 증인이 각자 다른 진술을 한다. 청교도 혁명을 일으킨 크롬웰이 죽고 찰스2세가 다시 왕정복고를 이루어낸 때, 국교도가 아닌 천주교인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지고 끊임없는 반란의 조짐이 각지에서 일어나던 혼란한 시대상황은 실로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서술자로 등장하는 '마르코 다 콜라'의 글을 읽으며 나는 솔직하면서도 담백한 그의 문체에 빠져들어갔고 그의 증언을 다 읽을 즈음에는 완전히 매력적인 인물로 콜라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솔직히 뒤에 나오는 잭의 증언, 그리고 특히나 더 월리스 박사의 증언을 읽을 때에는 커다란 충격에 사로잡혔다. 한점 의심할 점이 없을것 같은 명랑한 베네치아 신사 콜라가 그렇게 극악무도한 살인마로 비추어질 수 있다니. 솔직히 그로브 박사의 죽음에 대해 사라의 고백만듣고 '진짜 그녀가 범인이니까 자수했겠지'라고 믿는 콜라를 보면서 우스웠지만, 그렇게 믿는것처럼 진술한 콜라이기에 너무 순수해보여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 소설에서 살인사건은 커다란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네명의 증언에서 그로브 박사의 죽음은 단순히 어떤 큰 흐름속에 일어난 작은 일일 뿐이다. 각각의 증언이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고, 살인사건은 그들이 어떤 일을 하던 중에 어쩌다 일어난 배경처럼 서술되어 있다. 그렇기에 누가 그로브 박사를 살해했는가에 대해 아무도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고 그냥 한사람을 각자 범인으로 지목한 채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네명의 진술은 살인사건으로 얽혀있을 때 비로소 진가를 발휘한다.

  옥스퍼드의 사학자로 나오는 우드의 증언은 정말 결정적이다. 범인도 확실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네명의 이야기를 종합할만한 놀라운 사건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사람의 이야기에 살인사건말고 공통으로 등장하는 중요 인물 '사라 블런디'에 관한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네명의 진술 가운데서 가장 엇갈리는것도 바로 사라에 대한 인상이다. 누구에겐 요녀로, 버릇없는 하층민으로, 지적인 인물로, 심지어 여신으로까지 보이는 이 여인은 과연 진짜 어떤 인물이었을까. 모든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지만 증언하지 않는 사라블런디의 증언이 하나더 추가되어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핑거 포스트가 아닐까.

  사람들은 각자 보고싶은 대로 사건을 보고 납득한다. 다른 사람의 증언에서 어리숙한 바보로 나오는 앤소니 우드가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고 심지어 나름대로 추리까지 해 사건의 본질에 다가간 것을 보라! 그러나 1권 뒤에 있는 역자의 말에 보면, 우드의 증언이 핑거포스트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또다른 우상일지도 모른다고 넌지시 일러두고 있다. 과연, 그 는 많은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또한 '자신의 관점'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말이지! 한사람의 증언에서는 알 수 없는 여러 사실들을 조합해서 사건의 본질에 다가가는 형식이 참 참신한 소설이다. 김석희님의 번역도 아주 매끄러웠고 거의 모든 면에서 만족한 소설이다. 콜라의 영국에 대한 냉소나,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여러 학자들에 대한 언급, 또 의학,신학,정치,경제,사회등 다방면에 걸친 대화등이 시대배경을 아주 사실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특히 옥스퍼드 거리묘사는 실제로 옥스퍼드에 와있는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단 한가지 아쉬운점은, 이 책이 나오기전에 번역되었던 '옥스퍼드의 4증인'에서는 2권 뒤에 있던 역자의 말이 '핑거포스트, 1663'에서는 1권 뒤에 있다는것이다. 멋모르고 1권 뒤에 있는 역자의 말을 읽었다가는 스포일러를 당하기 십상!!! 실제로 나도 '아이쿠'했다. 출판사에선 미처 그것까지 고려를 못한 것일까. 책의 특성상 아주 많이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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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니아(Narnia) 연대기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소설가인 C.S 루이스가 일생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어린이들을 위해 창작한 동화 시리즈 이다. 내가 읽은 번역본은 시공주니어에서 나온 '나니아 나라 이야기' 로, 영화의 유명세를 타고 요 근래 합본도 나오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따로 골라 볼 수있는 이 7권짜리 번역본을 추천한다. 왜냐하면, 원서의 삽화를 그대로 살리고 있고 무엇보다 '연대기 순서'대로 실려있는 합본으로 보다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독자는 꼭 차례대로 읽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책이 출판된 순서'대로 읽는것을 추천한다. 예전에 한번 차례대로 읽다가 완독을 포기한 전적이 있기도 하거니와 책이 출판된 순서대로 읽는것이 작가의 의도를 더 쉽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복선도 찾아볼 수 있고 외전의 느낌을 더 살릴 수 있어 읽는사람의 흥미를 유발한다. 아래는 출판된 년도와 연대기 순서, 그리고 원제이다.

1950년 (2) The Lion, the Witch and the Wardrobe
1951년 (4) Prince Caspian
1952년 (5) The Voyage of the Dawn Treader
1953년 (6) The Silver Chair
1954년 (3) The Horse and His Boy
1955년 (1) The Magician's Nephew
1956년 (7) The Last Battle
(출처:http://myhome.naver.com/bergk/newdesign/home.htm)

  시공주니어판 제목으로 보자면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 캐스피언 왕자 -> 새벽출정호의 항해 -> 은 의자 ->말과 소년 -> 마법사의 조카 -> 마지막 전투, 이 순서로 출판이 되었고 나 또한 이 순서대로 완독했다.
  그러나 연대기의 순서대로 보자면 마법사의 조카->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 말과 소년 -> 캐스피언 왕자 ->새벽출정호의 항해 -> 은 의자 -> 마지막 전투, 가 될 것이다.
   읽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어떻게 읽을지는 독자 마음이지만 외전읽기를 좋아하고 작가의 필력 증진(?)을 느끼고 싶다면 전자의 방법을 추천한다. 연대기 순서대로 안읽으면 헷갈릴 수도 있다고? 그럴 걱정은 마시라. 각 권마다 어느 시대인지 충분히 작가의 설명이 들어가 있고 시공 주니어 판에는 뒤에 연대기가 있어서 전체적인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아직 읽지 않은 부분의 연대에 대해서는 조금 내용유출이 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읽고있는 책 부분만 살펴본다면 그럴 염려는 없다. 그리고 커다랗게 놓고보면 나니아 세계의 탄생과 멸망이라는 큰 흐름속에 이야기들이 있지만, 각 권은 독립된 이야기로써 다양한 방식으로 내용이 씌여져 있다. 즉, 그다지 연대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다. 다만 모든 권을 총괄하는 '마지막 전투'만은 맨 마지막에 읽기를 권한다. 전권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많이 나오고 이야기의 클라이막스이므로 정리하는 차원에서 보는것이 매우 바람직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내용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겠다. 혹자는 '나니아 연대기'를 두고 '동화를 위장한 전도서'라고도 하는데 그만큼 이 시리즈에는 기독교적인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있다. 나 자신도 각 권마다 숨어있는 기독교적 상징을 찾아내는것이 하나의 즐거움이었을 정도로 많은 요소가 기독교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있다. 그러나 이 책을 기독교 책이라고만 하기엔 그 풍부한 상상력이 아깝다. 일단 신화적 동물들과 마법의 등장은 기독교 냄새를 없애는데 큰 작용을 한다. 게다가 반드시 기독교라고는 할 수 없는 진리. 우주를 통틀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여러 진리들에 대한 이야기는 기독교로 한정하기에는 너무 편협한 생각이 아닌가 싶다. 나니아라는 대륙의 창조에서 멸망에 이르기까지 각종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진리가 거짓을 이기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뭐 독자가 악의 추종자라면 나도 할말은 없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보편적인 관점에서..)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 10점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시공주니어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은 내가 어렸을때 읽은 책이고, 또 제일 많이 읽은 책이기도 하다. 연대기의 첫 권이라서 그런지 루이스도 많은 복선을 깔아두지 않았다. 이 책에서는 페번시 가문의 네 아이들이 우연히 노 교수의 집에서 옷장을 통해 나니아를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나니아 대륙의 신비함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 될 것이다. 다른 책에 비해 나니아 대륙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고 여러 종족들이 다채롭게 등장한다. 오랫동안 존재하던 악을 물리치고 아담과 이브의 후손이 나니아 세계를 구원한다는 구세주의 개념, 그리고 세계의 신으로 등장하는 아슬란이 처음 등장하는것도 이 권에서이다. 이 권에서 아슬란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잇김을 통한 재생을 나타내며 선한 자에게는 용기를, 악한 자에게는 두려움을 심어주는 존재로 등장하게 된다. 나니아 시리즈의 전 권이 모험 이야기 이지만 이 권은 특히나 나니아 세계로 가는 첫 여행으로써 손색이 없다. 독자들은 페번시가의 네 아이들과 함께 옷장에서 나오면서 나니아에 대한 그리움을 갖게 될 것이다.

 
캐스피언 왕자 - 10점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시공주니어
캐스피언 왕자, 이 책은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을 아주 감명깊게 본 독자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권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페번시가의 네 아이들이 다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실과 다른 시간이 적용되는 나니아의 시스템을 확실히 인지하게 될 것이다. 이번 권은 무려 세권에 걸쳐 등장하는 주요 등장인물인 캐스피언 왕자가 첫 등장하여 왕위를 탈환하는 이야기이다. 이 시대는 신화가 사라지고, 과거 네 아이들이 다스리던 황금 시대가 잊혀져가던 때이다. 이번 권을 통해 독자들은 신화세계와 나니아의 부활을 경험하고, 옷장 말고도 나니아로 통하는 길이 여럿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새벽 출정호의 항해 - 10점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시공주니어
새벽 출정호의 항해, 이 권부터 나니아 세계는 크게 확장된다. 여태까지는 나니아가 대륙의 전부처럼 느껴졌다면 이젠 나니아가 아닌 다른 여러 나라들의 이름이 언급된다. 또한 바다를 통한 모험이라는 점에서 신선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마치 신밧드의 모험같달까. 무엇이 나타날 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도 목적지를 향해 항해하는 캐스피언과 에드먼드, 루시 그리고 유스터스의 용기를 독자는 배우게 될 것이다. 이 권에서는 현실에서 나니아로 오는 사람중에 유스터스가 포함되는데, 첫장부터 사람을 짜증나게 만드는 유스터스가 점차 성장해 가는 과정도 주목할 만 하다. 그리고 그림을 통해 이동한다는 생각도 참신했다. 이 책에서는 주인공들이 특정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유혹과 싸우게 될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유혹을 이겨내는지, 그리고 용감한 생쥐 리치피프의 입담도 주의깊게 볼 만 하다.

 
은 의자 - 10점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시공주니어
은 의자. 전 권에서 크게 성장한 유스터스와 새롭게 등장한 질 폴이 이번 권의 주인공이다. 마녀의 저주에 걸린 릴리언 왕자를 구출하는 모험을 통해 두사람 모두 (특히나 질) 모험에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동안 등장하지 않았던 나니아 위쪽의 북쪽 황야를 배경으로, 힘들고 지친 진짜 모험다운 모험을 그들은 하게 된다. 이번 권은 특별히 그동안 언급되지 않았던 여러 종족들이 등장해서 짧은 걸리버 여행기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주 나왔던 종족이 아닌 생소한 종족들, 그리고 아슬란이 질에게 준 표지등을 생각하면서 책을 읽으면 더 즐거울 것이다.

 
말과 소년 - 10점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시공주니어
말과 소년. 이 책은 정말 외전다운 외전이라는 느낌이다. 유일하게 현실세계의 아이가 주인공이 아닌 책이기도 하다. 시기상으로 보면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다음인데 정말 그 다음에 안읽어도 상관없다. 다 큰 에드먼드와 수잔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살짝일 뿐이고 주인공은 샤스타라는 소년이다. 이 책에서는 나니아보다는 그 주변 나라인 아챈랜드와 칼로르멘이 등장하면서 다른나라의 문화와 나니아에 대한 인식, 그리고 나라끼리의 관계등을 살펴보면서 온 세계관이 확 한눈에 보이는것을 느끼게 된다. 자유를 찾아 떠나는 샤스타와 아라비스, 그리고 두 말들의 모험을 통해 가슴깊이 따뜻한 웃음을 짓고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법사의 조카 - 10점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시공주니어
  마법사의 조카에서는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알게 될 것이다. 특히나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에 대한 복선이 상당히 많이 깔리게 되는데 옷장, 가로등, 그리고 말하는 동물들, 세계관등이 이때 다 나오게 된다. 물론 노 교수님 까지도. 이 책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와 세계를 잇는 '중간 세계' 의 개념이 등장하고 시리즈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악'이 어떻게 나니아 세계에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연대기 대부분에 걸쳐 등장하는 잘못과 그에 따른 책임-> 용서 라는 구도가 어떻게 설정되는지도 나온다. 선악과에 대한 비유도 나오고 어떻게 보면 이 권과 마지막권이 가장 기독교적 느낌이 많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 전투 - 10점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시공주니어
마지막 전투, 가장 암울하고도 화려한 이야기이다. 나니아의 마지막왕인 정의롭고 용감한 티리언과 유니콘 쥬얼이 등장하며 그들의 마지막을 유스터스와 질이 같이 하게 된다. 이 권에서는 좀더 현실적인 음모와 술수가 많이 등장하게 되는데 남을 속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여러 인물들과 신에 대한 이야기들이 좀더 자세하게 다루어 진다. 가장 전투씬이 화려한 권이기도 하다. 한가지 진실을 놓고 대응하는 여러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서 다양한 유형의 인물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이 있던 나니아는 파괴되며 아슬란을 믿는 동물, 사람들만이 새 나니아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는 여태까지 나왔던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며 (특히나 새벽출정호의 모험에 나왔던 리치피프 복선이 이 때 활용되는것이 참으로 흥미로웠다) 수잔의 변심과 나머지 인물들의 열차사고로 인한 '죽음'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또한 타슈를 믿었음에도 진정한 나니아로 가게 된 칼로르멘의 왕자를 통해 루이스의 종교관을 엿볼 수 있다.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번역본 뒤에 있는 롤링의 간담회에 보면 '해리포터 시리즈가 점점 어두워져가고있다'라는 질문에 롤링이 '특별히 어두워지고있지는 않다. 1권은 누군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하고 뒷통수에 사람의 얼굴이 있는 끔찍한 설정이 나온다'는 대답이 적혀있는것을 볼 수 있다. 나는 이 나니아 연대기도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모험 이야기가 아니라 진실되게 사는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책이라고 말이다. 모든 등장인물은 자신의 죄에 대한 죗값을 치루며 때로는 죽음으로 갚기도 한다. 또한 여러 전쟁씬을 보면 어린 주인공들이 자신의 정의와 몸을 지키기 위해 심지어 상대방을 죽이기 까지 한다. 유쾌하고 즐거운 모험 이야기 속에 이런 면들을 보게 되면 때로는 섬뜩하기도 하다. 그리고 아무리 봐도 아랍인인 칼로르멘인들의 모습에서 재밌으면서도 씁쓸함을 느꼈다. 백인인 나니아인들과 비교하여 야만적인 묘사는 그냥 그렇다고 쳐도 특히나 마지막권에서 그들의 신인 타슈를 악마로 설정한것은 참 많이 안타까웠다. 게다가 타슈와 아슬란을 합친 타슐란의 등장은 동화에서 이런것까지 다루어도 되나.. 할 정도로 상당히 종교적으로 충격적이었다. 좋게좋게 보자면 그 모든건 설정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읽으며 조금 신경이 쓰이더라.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는 아이들에게는 상상력과 모험심을 키워주는 동화로, 또 어른들에게는 진정한 진실과 진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으로 오랫동안 계속 사랑받아 왔다.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이 영화화 된것을 이후로 연대기가 계속 영화화 될 조짐이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서도 좀더 많은 독자가 생겨서 나니아 세계에 대해 좀더 깊게 서로 이야기해 볼 수있기를 바란다.

  덧// 개인적으로 유스터스가 가장 좋다! 영화에서 만날 고집쟁이 유스터스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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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런 섄 12대런 섄 12 - 10점
대런 섄 지음, 안종설 옮김/문학수첩리틀북스
  이 작품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호러도 아니고 괴기 소설도 아닌것이 ... 뭐 굳이 크게 분류하자면 판타지로 넣어야 할 것이다. 책 뒷표지의 설명에 의하면 해리포터의 작가인 조앤롤링도 크게 격찬했다고 하는데, 글쎄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나 역시 이 책의 흡입력이 뛰어나다는 것에 흔쾌히 한표를 던지고 싶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글이 쉽게 읽힌다는 것이다. 막힘없이 술술 서술해나가는 1인칭 시점은, 독자를 잠시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진짜 겪은 일처럼 사건을 담담하게 서술해 나가는 문체가 짜릿하면서도 오싹함을 준다. 또 작가의 독특한 설정과 상황묘사- 특히 격투씬 - 도 훌륭하다. 좀 과하게 표현한다면 '작가의 손 가는대로 대충 짜 넣은 스토리'같지만 사실은 치밀한 반전이 숨겨져있다. 특히 중반 이후에는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면서 독자를 조금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든다. 특히 마지막권의 마지막부분은 정말 환상적이다. (솔직히 마지막 12권이 아니었으면 그 전에 아무리 재미있었어도 리뷰까지 쓰지는 않았을것이다)

  대런 섄 시리즈의 주인공인 대런 섄은 어떤 이유로 반 뱀파이어가 되어 그에게 주어진 운명에 맞서 그와 그의 종족의 생존이 걸린 싸움을 하게 된다. 뱀파이어라고 해서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고전적 이미지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무척 현실적이며 또한 입체적이다. 많은 인물이 죽지만 그것은 호러가 아니라 삶에 대한 투쟁의 과정이다.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점은 '예언자'들의 등장이다. 그들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기도 하고 미래를 내다보기도 하지만 완벽하게 타인의 운명에 간섭할 수는 없으며 미래를 바꿀 수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의 힘은 크며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에게는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운명'에 맞서는 대런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운명'을 뛰어넘고야 만다.

  판타지,라고는 하지만 이 책도 어디까지나 성장소설이다. 대런 섄이라는 주인공과 함께 신비로우면서도 고통스러운, 흥미진진하면서도 가슴아픈 모험을 하면서 나의 마음도 조금은 자랐을까. 해리포터 이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판타지가 술술 쏟아져 나오는 유럽의, 조금은 무거운 그러나 독특한 이야기를 원하신다면 서슴없이 이 책을 권해드리겠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어보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따라서 중요한 언급은 피하고 간략하게 책 소개를 하는 차원에서 리뷰를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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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유골성녀의 유골 - 10점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북하우스
  나에게 있어 캐드펠 시리즈는 각별하다. 나는 이 작품을 2003년에 처음 접했는데, 그 전까지는 역사추리라는 장르가 있는줄도 알지 못했다. 역사소설도 좋아하고 추리소설도 좋아하지만 그 두가지를 합한 팩션(fact+fiction)이라니! 그야말로 내가 원하던 장르였던것이다. 나는 캐드펠에게 반해 20권이라는 다소 많은 이 시리즈를 금세 다 읽어버렸고 이후로도 역사추리소설이라면 관심을 갖고 접하게 되었다.

  요즘들어 '다빈치 코드'같이 역사적 미스테리를 후대에 파헤치게 된다는 내용의 작품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런 작품에 '역사추리'라는 수식어를 붙이는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국내에 '역사추리'라는 장르가 보편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역사추리'라고 소개되는 작품중에 진정한 역사추리가 몇개 없는것을 보면 자칫잘못하다간 진짜 역사추리소설이 설자리가 사라지게 되는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정의하는 '역사추리'라는 장르는 실제 존재했던 역사적 상황안에서, 실존했던 인물과 허구적 인물이 공존하며, 어떠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즉 다시말하면 현대의 인물이, 과거의 사건을 해결하는건 역사추리가 아니다. 그건 차라리 스릴러나, 탐험소설이라고 불리는게 더 적합할 것이다. 말이 조금 길어졌는데, 자세한내용은 내가 예전에 작성했던 포스팅을 참고하였으면 좋겠다. 이러한 역사추리물중에도 단연 완성도있게 돋보이는 작품이 바로 이 캐드펠 시리즈다.

  엘리스 피터스가 1977년부터 20여년에 걸쳐 총 20권을 펴낸 캐드펠 시리즈는 12세기 영국, 시로프셔 주의 시루즈베리라는 마을을 중심으로 수도사 캐드펠이 혼란스러웠던 중세에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해결해나가는 이야기다. 주인공 캐드펠은 실존 인물로 ,수도사임에도 불구하고 편협하지 않은 종교관과 따뜻한 인간애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60대의 노인이지만 수도원 생활을 시작한 지는 20년이 채 안되는 캐드펠은 과거 십자군원정을 갔다왔을정도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그때를 바탕으로 한 민첩한 몸놀림과 냉철한 이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신에 대한 믿음, 약초에 대한 뛰어난 지식 등은 그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다. 작가의 손에서 재탄생하여 중세적 인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정도로 유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캐드펠. 신성과 세속과 같은 종교적 문제 뿐만아니라 잉글랜드와 웨일즈, 스티븐왕과 모드 황후라는 지역적,정치적 문제에서까지 캐드펠은 현명하고도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다. 혹자는 이를 두고 엘리스 피터스가 완벽한 중세 인물을 재현하는데 실패했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그가 더 돋보이는것이 아닐까. 그리고 과연 중세인들중에 그와같은 인물이 없었다고 그 누가 잘라 말할 수 있겠는가.
  
  한편 캐드펠 시리즈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것은 작가의 고향이기도 하며 현재까지 남아있는 마을인 잉글랜스 시로프셔 주의 시루즈베리에대한 묘사다. 마을과 여러 건축물들, 전원적이고 아름다운 풍경등의 묘사는 너무나 실감나도록 당시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독자는 시루즈베리 수도원과 시루즈베리 시내, 산과 강과 들판을 캐드펠과 함께 지나다니며 시루즈베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시루즈베리는 캐드펠때문에 관광명소가 되었다)

  성녀의 유골은 그러한 캐드펠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이다. 주인공인 캐드펠이 첫 등장하는것이니만큼 작가는 캐드펠이 어떤 인물이라는것을 보여주는데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캐드펠이 몸담고 있는 성 베네딕트 회 시루즈베리 수도원은, 야심만만한 부수도원장 로버트가 수도원과 자신의 지위를 강화시키기 위해 성녀의 유골을 모셔오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들은 웨일즈에 있는 위니프레드 성녀의 유골을 찾아 가지만 웨일즈인들은 성녀는 자신들의 것이라며 반발한다. 그 와중에 마을의 지주가 살해당하고, 로버트는 성녀의 저주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렇게 말하면 간단한것같지만, 사실 이 이야기의 플롯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교회내 권력에 대한 집착, 기적과 계시, 잉글랜드인과 웨일즈인간의 차이 및 갈등, 지주와 자유민과 농노, 사랑과 질투 등등이 포함되며 이야기는 한층 더 복잡함을 띤다.

  캐드펠시리즈는 완벽하게 재현해 낸 중세시대 영국과 영국인들, 그리고 그 와중에 벌어지는 각종 사건 사고와의 얼개, 그러나 그것을 해결하는데 있어 시공간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사랑과 믿음, 인간애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만들어진 하나의 걸작이다. 역사추리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 세계'에 푹 빠지는것이 상당히 익숙할 수 있으나 아직 그것이 어색하다면 차근차근 역사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으로 접근해 보길 권한다. 또한 사건을 해결할 때 현대의 수사방법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생각해가면서 읽는다면 더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것이다. 지문도 DNA도 추출할 수 없는 과거에 과거인들이 어떤 지혜를 가지고 사건을 해결하는지, 또 그만큼 인간에 대한 신뢰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게 된다면 '역사 추리소설'의 매력을 찾아낸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인공 캐드펠이 각권마다 새로이 보여주는 또다른 매력역시 찾아내길 바라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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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마도사 1바람의 마도사 1 - 10점
김근우 지음/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한국 판타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중에 '바람의 마도사'가 한국 판타지의 장을 열었다는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바람의 마도사'는 최초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인터넷'이라는 용어보다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가 더 익숙했던 90년대 중반, 판타지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습작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기를 얻은 수많은 작품들이 퇴마록을 필두로 출판이 되었고 그러한 방식은 아직까지도 한국 쟝르 문학 출판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만약 퇴마록을 판타지 쟝르에서 제외한다면, 명실상부한 최초의 판타지 인기작은 이 '바람의 마도사'가 될 것이다. 한국 판타지 문학을 뒤늦게 접한 사람이라면 '드래곤라자'나 '가즈나이트' 같은 작품을 더 먼저 떠올릴 수도 있지만, 그러한 1세대 판타지 작품들중에서도 이 '바람의 마도사'는 특별하다.

  2000년대 이후 인터넷에서 연재한 아마츄어 판타지 문학들이 그야말로 쏟아져 나왔으나, 그 중에서도 작품성이 있다고 인정받고 있는것은 그보다 약간 앞서 출판되었고 지금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1세대 판타지 작가들의 작품들이 대세다. 먼저 출판되었다는것에 가산점을 주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처음 한국 판타지 문학을 이끌었던 몇몇 작가들은 그만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던것이 사실이다.

 '바람의 마도사' 역시 그러하다. 지금이야 너무나 익숙하고 많이 사용되고 있는 설정들이지만, 그 당시에 '정령마법'을 이용한 '마도사'라는 것은 신선한 소재였다. 게다가 '정령마법의 혼합'이라니, 앞으로도 뒤에도 없을만한 발상이다. 또한 전형적인 중세 판타지적 세계관과 영웅적 인물의 일대기는 잘 어울리는 조합이지만, 그 과정또한 순탄하지는 않다. 주인공이 힘을 얻는 과정이 무공 비급을 얻듯 약간의 우연이 가미되어 있긴 하지만 끊임없이 소중한 사람을 잃고 좌절하며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주인공의 여정은 현실 그 자체이다.
 
  개인적으로 '바람의 마도사'는 작품성과 재미를 반씩 더한 기본서라고 평하겠다. 근 10년동안 한국의 판타지 문학은 이래저래 좌충우돌 끝에 발전해 왔다. 재미만을 추구한 작품, 작품성에 치중해 흥행에 실패한작품, 수많은 매니아를 낳은 작품등등 엄청난 수의 작품이 출판되고 또 사라져갔다. 그 중에 '바람의 마도사'는 재미와 작품성을 골고루 갖춘, 교본과도 같은 작품이다. 한 영웅의 일대기 형식이라 쉽게 읽히고 5권으로 내용또한 길지 않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이 작품을 잊고 있었을테지만 출판사는 잊지 않고 발매 10년인 지난 2006년에 개정판을 냈다. 북박스로 바뀐것으로 봐서 판권이 넘어갔나보다.

 1세대 판타지의 추억을 느끼고 싶은 사람, 아니면 1세대 판타지를 접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판타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을 추천한다.
http://senillia.tistory.com2008-08-20T07:14:07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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